결론부터. 올해 안에 게이밍 PC 새로 맞출 계획이었다면 잠깐 손을 멈추는 게 좋습니다. 램값이 분기 만에 90% 뛰면서 완제품 PC, 그래픽카드, 심지어 라즈베리파이까지 줄줄이 값이 올랐고, 밸브가 만든 스팀 머신조차 예상가의 두 배 가격표를 달고 나왔습니다. 부품 사는 데 쓸 돈을 아끼고, 지금 쓰는 컴퓨터에서 잘 돌아가는 명작을 쟁이는 게 올해 가을 가장 현실적인 선택입니다. 그래서 아래에 내장그래픽으로도 돌아가는 저사양 명작 8개를 가격과 최소 사양까지 정리했습니다.
이 글의 가격·평가는 2026년 9월 18일 기준이며, 스팀 상점 데이터를 직접 확인해 적었습니다. 할인은 수시로 바뀌니 구매 전 상점 페이지를 다시 확인해 주세요.
1. 램값,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AI가 메모리를 다 먹었다"입니다. 2025년 말부터 메모리 제조사들이 소비자용 물량보다 AI 서버용 물량을 우선 배정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가 올해 2분기 가격표에 그대로 찍혔습니다. 전년 대비가 아니라 전 분기 대비 상승률이라는 점이 무섭습니다.
- DRAM 칩 가격: 2026년 2분기에 전 분기 대비 약 90% 폭등
- DDR4 16GB 모듈: 137.3달러 → 207.1달러 (+51%)
- LPDDR5X 96Gb 모듈: 77.1달러 → 145.9달러 (+89%)
- 256GB UFS 스토리지: +103% / uMCP +107%
메모리만 오르고 끝나는 게 아니라는 게 문제입니다. 완제품 PC 업체 사이버파워PC는 "메모리 가격이 500% 뛰고 SSD도 100% 이상 올랐다"고 설명했고, 델은 최대 10~15% 인상을, 레노버도 비슷한 수준의 인상을 검토했습니다. 그래픽카드 쪽에서는 AMD가 VRAM 8GB당 10달러씩 값을 올려 RX 9070 XT가 619달러가 됐습니다. 라즈베리파이 5 최고 사양도 25달러 올라 출시가 대비 20% 넘게 비싸졌습니다. 애꿎은 취미용 보드까지 유탄을 맞은 셈입니다.
그리고 가장 우울한 부분. 분석가들은 이 공급 부족이 2028년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조금만 기다리면 내려간다"가 통하지 않는 국면입니다.
2. 스팀 머신이 1,049달러가 된 이유
이 사태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준 게 밸브의 스팀 머신입니다. 2026년 6월 29일 출시, 가격은 이렇습니다.
- 512GB 모델: 1,049달러
- 2TB 모델: 1,348달러
- 스팀 컨트롤러 번들은 추가 비용
스펙은 커스텀 AMD Zen 4 6코어 12스레드(최대 4.8GHz), RDNA 3 기반 28CU GPU에 GDDR6 8GB, 시스템 메모리는 DDR5 16GB입니다. 스팀덱보다 훨씬 강력한 거실용 소형 PC고, 하드웨어 자체는 잘 만들었습니다. 문제는 값입니다. 발표 전 업계에서 점쳤던 가격대는 500~800달러 선이었습니다. 밸브도 "글로벌 부품 부족 때문에 가격이 예상보다 크게 높아졌다"고 인정했습니다.
거실에 놓는 보급형 콘솔 대체품으로 기획된 기기가 환율 1,400원대 기준 150만원 안팎이 되면, 원래 기획 의도 자체가 무너집니다. 심지어 메모리 수급 사정 때문에 16GB를 한 장으로 넣을지 8GB 두 장으로 넣을지가 물량에 따라 달라진다는 이야기까지 나왔습니다. 밸브 정도 되는 회사도 메모리 제조사 앞에서는 협상력이 없었다는 뜻입니다.
3. 그래서 결론: 본체 대신 게임을 사자
여기서 관점을 한 번 뒤집어 봅시다. 본체 한 대에 150만원을 쓴다면, 같은 돈으로 저사양 명작을 100개 가까이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냉정하게 말해, 스팀에서 평점이 가장 높은 게임들은 대부분 최신 그래픽카드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발라트로는 최소 램이 1GB고 내장그래픽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2024년 게임계를 통째로 흔들었습니다.
아래 8개는 전부 10년 전 노트북 수준에서도 돌아가면서, 스팀 평가가 "매우 긍정적" 이상인 게임들입니다. 가격 낮은 순으로 정리했습니다.
| 게임 | 가격 | 최소 램 | 스팀 평가 | 한국어 |
|---|---|---|---|---|
| 뱀파이어 서바이버즈 | 5,000원 | 1GB | 압도적으로 긍정적 (98%) | 지원 |
| 슬레이 더 스파이어 | 6,750원 (75% 할인) | 2GB | 압도적으로 긍정적 (97%) | 지원 |
| 테라리아 | 11,000원 | 2.5GB | 압도적으로 긍정적 (97%) | 미지원 |
| 돈 스타브 투게더 | 15,500원 | 1GB | 매우 긍정적 (95%) | 지원 |
| 스타듀 밸리 | 16,000원 | 2GB | 압도적으로 긍정적 (98%) | 지원 |
| 발라트로 | 16,500원 | 1GB | 압도적으로 긍정적 (98%) | 지원 |
| 할로우 나이트 | 16,500원 | 4GB | 압도적으로 긍정적 (97%) | 지원 |
| 데이브 더 다이버 | 24,000원 | 8GB | 압도적으로 긍정적 (96%) | 지원 |
※ 8개 전부 합쳐도 111,250원. 스팀 머신 512GB 모델 값의 10분의 1도 안 됩니다.
① 뱀파이어 서바이버즈 — 5,000원 / 램 1GB

뱀파이어 서바이버즈 게임플레이 (출처: 스팀 상점 페이지)
커피 한 잔 값으로 살 수 있는데 플레이타임은 수십 시간이 나옵니다. 마우스도 거의 안 씁니다. 캐릭터를 움직이면 공격은 자동으로 나가고, 화면을 가득 메운 적을 갈아버리는 쾌감으로 밀어붙이는 게임입니다. 최소 사양이 램 1GB, 저장 공간 2.5GB. 사무용 노트북에서도 문제없이 돌아갑니다. 26만 명 넘는 평가에서 98%가 긍정적입니다.
② 슬레이 더 스파이어 — 6,750원 (75% 할인) / 램 2GB

슬레이 더 스파이어 게임플레이 (출처: 스팀 상점 페이지)
이 글에서 가장 급한 항목입니다. 정가 27,000원이 75% 할인으로 6,750원까지 내려왔습니다. 덱빌딩 로그라이크라는 장르를 사실상 대중화시킨 작품이고, 이후 나온 카드 로그라이크는 전부 이 게임과 비교당하는 처지입니다. 21만 건이 넘는 평가에 97% 긍정. 최소 사양은 램 2GB에 OpenGL 3.0 지원 그래픽이면 끝입니다. 할인 종료일은 상점에서 확인해 주세요.
③ 테라리아 — 11,000원 / 램 2.5GB

테라리아 게임플레이 (출처: 스팀 상점 페이지)
제가 개인 계정으로 254시간을 박은 게임입니다. 2D 샌드박스인데 탐험, 건축, 보스전, 장비 파밍이 전부 들어 있고, 최대 8인 멀티가 됩니다. 평가 155만 건 중 97%가 긍정적. 최소 사양은 2.0GHz CPU에 램 2.5GB, 저장 공간 200MB로 이 목록에서 가장 가볍습니다. 다만 공식 한국어는 지원하지 않습니다. 한글 패치가 있고 영어도 어렵지 않은 수준이지만, 텍스트가 걸린다면 참고하세요.
④ 돈 스타브 투게더 — 15,500원 / 램 1GB

돈 스타브 투게더 게임플레이 (출처: 스팀 상점 페이지)
친구랑 같이 굶어 죽는 게임입니다. 협동 생존 장르에서 여전히 상위권에 있고, 램 1GB에 라데온 HD5450급 그래픽이면 돌아갑니다. 평가는 54만 건 중 95% 긍정으로 "매우 긍정적"입니다. 이 목록의 다른 게임들이 "압도적으로 긍정적"인 것과 구분되는 등급이니 정확히 적어 둡니다. 한국어 지원되고, 세일 때는 2인 번들로 더 싸게 풀리기도 합니다.
⑤ 스타듀 밸리 — 16,000원 / 램 2GB

스타듀 밸리 게임플레이 (출처: 스팀 상점 페이지)
램 2GB, 저장 공간 500MB. 용량으로 치면 스마트폰 사진 몇 장 수준인데 평가가 100만 건을 넘겼고 그중 98%가 긍정적입니다. 농사, 채굴, 낚시, 연애, 마을 복원까지 다 들어 있어서 한 번 시작하면 계절이 바뀝니다. 최대 4인 협동도 됩니다. "컴퓨터가 안 좋아서 할 게임이 없다"는 말에 가장 먼저 내놓는 답입니다.
⑥ 발라트로 — 16,500원 / 램 1GB

발라트로 게임플레이 (출처: 스팀 상점 페이지)
포커 족보와 조커 카드를 조합해 점수를 뻥튀기하는 게임입니다. 최소 사양이 i3에 램 1GB, 내장그래픽, 저장 공간 150MB. 이 글의 주제를 가장 잘 증명하는 게임이기도 합니다. 그래픽카드 값이 오르든 말든 상관없는 게임이 상을 쓸어갔으니까요. 19만 건 평가에 98% 긍정. "한 판만 더"가 새벽 3시로 이어지는 유형이라 주말 앞두고 시작하시길 권합니다.
⑦ 할로우 나이트 — 16,500원 / 램 4GB

할로우 나이트 게임플레이 (출처: 스팀 상점 페이지)
목록에서 사양이 조금 올라가지만 여전히 가볍습니다. GTX 560 Ti나 라데온 HD 7750급이면 되고, 이건 2011~2012년에 나온 그래픽카드입니다. 56만 건 평가에 97% 긍정. 메트로바니아 장르의 기준선 같은 작품이고, 플레이타임 대비 가격으로 따지면 이 목록에서 손에 꼽습니다. 후속작을 기다리는 사람이라면 지금이 예습 타이밍입니다.
⑧ 데이브 더 다이버 — 24,000원 / 램 8GB

데이브 더 다이버 게임플레이 (출처: 스팀 상점 페이지)
국산 게임이고, 최소 램이 8GB로 목록 중 가장 높습니다. 대신 요구 그래픽은 GTS 450 / 라데온 HD 5570급이라 GPU 부담은 거의 없습니다. 낮에는 물고기를 잡고 밤에는 초밥집을 운영하는 구조인데, 이 조합이 왜 재미있는지는 해 보면 알게 됩니다. 16만 건 평가에 96% 긍정. 한국어는 당연히 완벽합니다.
4. 정리
메모리 값이 2028년까지 높게 유지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 상황에서, 지금 본체를 바꾸는 건 가장 비싼 타이밍에 사는 일이 됩니다. 반대로 게임 값은 오르지 않았습니다. 위 8개를 전부 사도 111,250원이고, 스팀 머신 한 대 값이면 이런 게임을 100개 가까이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스팀 가을 세일이 10월 1일에 시작합니다. 위 목록에서 급한 건 이미 75% 할인 중인 슬레이 더 스파이어 하나뿐이고, 나머지는 위시리스트에 넣어 두고 가을 세일을 기다리는 쪽이 유리합니다. 세일 시작하면 이 목록 기준으로 할인 폭 정리해서 다시 올리겠습니다.
부품 값이 미친 해지만, 게임은 아직 착합니다. 있는 컴퓨터로 재밌게 버텨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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